예로부터 감귤은 제주의 특산품이면서 진상품이었다.

조선시대 때는 감귤이 진상되면 임금이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나눠주고 별시(別試)인 황감제(黃柑製)를 실시했을 정도다.

제주 감귤의 역사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고려사(高麗史)에 ‘백제 문주왕 2년(476년) 4월 탐라에서 방물(方物)을 헌상했다’는 기록과 고려 태조 천수 8년(925년) 11월에 ‘탐라에서 방물을 바쳤다’는 내용이 있어 방물에 감귤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사 세가(世家)에는 문종 6년(1052년)에 ‘탐라국의 세공귤자(歲貢橘子)를 100포로 정한다’는 기록이 있어 감귤이 그 이전부터 공물로 바쳐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일본서기에 ‘수인제(垂仁帝)의 명에 의해 서기 70년에 상세국(尙世國)에서 비시향과(非時香果)를 가져왔다’는 기록을 근거로 상세국은 제주도이며, 비시향과는 감귤의 한 종류라고 추론하기도 한다.

▲현대 들어 제주의 감귤은 1970년대에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당시 감귤나무는 ‘대학나무’로 불렸다. 지금은 작은 규모지만 그때는 1000평 정도의 과수원만 있으면 자식들을 대학 보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정도였다.

과수원집 아이들도 선망의 대상이 됐다.

소풍 때나 가을운동회 때 담임선생님에게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귤을 선물하던 학생들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 감귤농사가 잘 됐던 옛 서귀포시와 남원읍 지역은 그 당시 도내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호황도 누렸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감귤 재배지역이 우리나라 남부지역까지 확대됐고, 만감류는 충청지역에서도 하우스 재배를 할 정도니 제주 감귤의 가치가 예전에 비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감귤산업은 제주의 생명산업이다.

▲현대 이후 제주의 감귤은 제주인들에게 삶의 희망을 줬지만 조선시대에는 ‘눈물’의 근원이기도 했다. 정약용은 정조에게 지방 비리의 예로 제주의 감귤을 들었다.

“진상품인 감귤이 관리들의 수탈이 대상이 되자 백성들이 독초 즙을 뿌려 시들어 죽게 하고 있다”고 일러바쳤다.

나무 수가 장부에 올라 있으면 감귤이 잘 달렸든 안 달렸든 일정량을 바치지 않으면 갖은 고초를 겪으니 제주 백성들이 차라리 감귤나무를 고사시켜 버린 것이다.

▲제주한의약연구원이 내달 2일 서귀포시 감귤박물관서 황감제를 재연한다.

많은 도민들이 감귤박물관을 찾아 감귤의 역사와 애환, 그리고 생명산업으로의 성장 과정 등 감귤을 제대로 아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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