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에 기반한 의학으로는 환자에게 치료도, 감동도 주는데 한계 달해
한의학에 진지한 일본인들, 치료효과는 물론 한의학의 온정에 마음 열어
제주 한의웰니스 팸투어를 마치고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2박3일간 제주한의약연구원 주관으로 제주 지역 5개 한의원(김성진의원·아침한의원·제원한의원·제주사랑한의원·하늘마음한의원)을 대상으로 한 ‘한의웰니스팸투어’가 성황리에 이뤄졌다. 올해 여름 오사카에서 진행된 ‘한방웰니스관광 설명회’(본지 9월18일 기사 참조)의 결실을 두 달만에 맺게 된 것이다.
근래 제주 양방 병의원을 중심으로 의료관광 활성화 노력이 있긴 했지만, 차별화된 의료상품의 부재와 제주 자연과의 유기적 융합 부족으로 인해 투자에 부합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번 팸투어는 제주 자연을 활용한 ‘한의웰니스관광’이 제주 의료관광에 적합하다는 것을 외국인과 관계기관에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이번 기고를 통해 일본인 참가자들의 피드백을 토대로 제주의료관광과 한국 한의학의 가능성을 동료 한의사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일본인들은 공항에 내려 매연 없는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점, 말이 통하지 않기에 오히려 느껴지는 맞이하는 사람들의 진정성, 우수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한 한식요리 그리고 세심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 한의원 진료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비록 내국인과 다를 바 없는 진료였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건강하고자 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진료가 주는 상호교감은 그들만큼이나 한의사인 나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일단 그들이 진료에 임하는 자세가 몹시 진지했다. 80대 노인께서 앞에 쌓아놓은 제철과일과 다과를 마다한 채, 건강에 대한 관심사를 질문하고 그에 답하는 한의사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기하는 열의가 인상적이었다.
일본측 인솔자에게 ‘시험 볼 것처럼 열심이라고, 원래 저런 분들이냐’고 물어봤더니, 일본에선 의사들이 질문에 속 시원히 답을 안 해줘서 불만인데, 한의사들이 그들보단 납득할 만한 설명과 조언을 해주기에 일본에 가서 조언이 필요할 때 찾아보기 위해 필기해두는 거라고 답해 주었다. 일본에 간 조선통신사가 된 느낌이랄까.
게다가 질문들도 “제주 진피는 생산할 때 세척제를 사용한다는데 그에 대한 약재 안정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지?”라고 질의하는 등 노인들의 수준이라 보기에는 상당히 날카로웠다.
이렇게 진지한 일본인들이 한의원 진료를 받으면서 감동했던 포인트들을 되짚어 보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침과 부항, 뜸도 물론 효과적이었지만, 그들이 마음 놓고 몸을 맡기게 되었던 계기는 으리으리한 인테리어도, 과학을 끌어다 앞세운 권위도 아니었다.
말로 진료를 못하니 찬 발바닥에 핫팩을 대주고, 침침한 눈 주변에 수기를 해주고, 등 굽은 할머니 가슴 積을 부드럽게 풀어드리는 것들이었다. 이것이 오히려 환자를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난 배려와 스킨십이 되어 일본 환자들의 움츠렸던 몸과 마음 경계가 풀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한의사가 되겠다던 옛 추억이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 환자를 보다가 불쑥 나타나 신기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명의는 명환이 만든다는 말이 있나 보다.
저수가 때문에 주력 기술의 고급화는커녕 뜸도, 부항도 버리고 비급여 매출 의존도만 높아져만 가는 한의계에서, 그래도 저수가를 감수하고 보험 처치 내에서 환자에게 베푸는 마음으로 뜸과 부항과 침을 성심성의껏 시술하는 많은 한의사들이 있다.
나라는 낮은 급여로 사기를 꺾고, 세상은 매출이 적다 평가절하 할지라도, 바보처럼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한의사말이다. 그들이 감사와 응원 같은 긍정의 피드백으로 보상받으면서 내일의 힘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일본인들을 진료하면서 들었다.
이처럼 관광을 겸한 일본인 팸투어는 나에게 여러모로 색다른 경험이 되었고 평소 소신에 확신을 더하게 됐다. ‘유물론에 기반을 둔 양의학만으론 갈수록 환자를 치료할 수도, 감동시킬 수도 없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검진되는 물질만이 병의 원인이고, 이에 대응하는 물질만이 병의 치료제라는 절름발이적 세계관으로 환자를 보면서 ‘그들이 스스로 헤매고 외면한 환자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자기들을 의료난민으로 칭하며 우리보다 수십년 앞선 변화를 겪고 있는 일본 환자들을 만나면서 생긴 확신이다. 호텔 같은 으리으리한 병원을 갖고 있다고, 주류 과학의 호위를 받고 있다고 해도 합리적으로 틀린 건 틀린 거다.
그러기에 앞으로 AI와 함께할 새 시대 의료인으로 심신을 아우르는 전인적 인체관의 한의사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담을 그릇만 된다면 말이다. 그릇은 헌신으로 만들어진 능수능란한 개인 실력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 집단윤리의식일 것이다. 헌신, 실력, 도덕성의 그릇이 잘 빚어졌으면 좋겠다.
